우리 족보의 연혁 우리 淸州金氏는 신라 金閼智 후손으로 始祖 金勤謙을 고려 8년 淸州君으로 封하야 金潾의 上系에는 文獻이 자세히 전하지 않아 生卒年 관작 史蹟 墓所 配位 等 내역이 미상이다.그러나 년 庚寅譜 초보에서 癸酉譜 七次에 거쳐 발간하여 宗族의 血統 보전과 계승을 위한 同族 집단의 응집력을 강화하였다. 今般 수보를 하면서 淸州와 규장각 역사학 학자들로부터 자료와 세미나를 하여 위대한 淸州 가문을 찾았고 김근겸 김언규 김긍률 先祖와 김예종 김희일의 철당간 주건을 하였다는 문화적 역사적 큰 업적을 알게 되었으며 김덕겸 묘지명의 발굴로 우리가 몰랐던 상계 고려 13년 이후 선조를 찾을 수 있었다.
南落의 中始祖 潾字 祖上任께서 338년 出生하시어 사촌동생 禧와 고려 공민왕 년 3년 庚子榜 同年에 정몽주 문익점과 과거에 합격한 내용이 하버드 옌칭에 원본이 보관하고 복사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하는 자료를 찾는 것은 우리 씨족으로 큰 대과라 할 것이다.
潾字 祖上任은 벼슬을 두루 거쳐 공양왕 이방원이 정몽주를 시해하여 태조 이성계가 왕에 등극하자 벼슬을 치사하고 長興으로 落鄕 후대들이 湖南과 경기도에서 세거해 오다가 핵가정으로 거듭된 時代的 환경으로 다수인의 누보와 先代의 行蹟 미상 등 편찬 내용이 충실하지 못하고 남북통합 대동보 합편 역시 오랫동안 묵은 난제로 이어져 왔다.
지난 수차의 보첩 서문에 따르면 선대의 생졸년 관직 사적 등 미흡한 부분을 詳考하여 수록할 수 있는 識者가 있기를 소망한다는 先代의 유서가 전해오고 있다가 이번에 출생년도와 벼슬 등과 기록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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