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 청주김씨 소개내용 보완
네이버 지식백과에서의 성씨와 본관 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청주김씨는 2000년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9,161가구(29,198명)이며, 1세조를 김보(金甫), 김하통(金夏通), 김사지(金四知) 계통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세조별 세거지는 함경도 북청(김보 계통), 함경도 홍원(김사지 계통), 충청도 청주(김하룡 계통)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청주김씨 소개내용 가운데에 용두사지 철재당간 발원문 내역, 금강사 보수공사 예산확보 등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청주김씨에 대한 인터넷 매체들의 소개자료들이 잘못되어 있거나 보완할 사항이 있으면 바로잡는 노력을 후손들이 솔선하여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따온 글>
청주김씨 족보싸이트 http://www.cjkim.kr에 들어가면 보다 정확한 소개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최근 청주시청에서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청주김씨, 청주한씨, 청주손씨, 청주경씨 12명 가운데 청주김씨 6명, 손씨 3명, 한씨 2명, 경씨 1명이 청주 중앙공원 옆 용두사지에 962년(광종13년)에 건립된 철제당간(국보 41호) 하단에 양각으로 주조된 발원문이 고려초기 역사적 중요자료가 되기 때문에 보물로 지정되어 지금도 청주시청에서는 매3년마다 보수유지를 하면서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와같이 양각된 발원문은 1377년 발간된 직지심경 보다도 400년이 앞서 금속활자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독일 구텐베르그가 별명하였다고 하는 금속활자 보다 570년이 앞선 활자(주조)기술이라 할 수 있다. 용두사지 철제당간 발원문에 상대등으로 호칭된 2명의 청주김씨인 김예종, 김희일(혹자는 김긍률로 기술됨)은 사촌간이며, 김예종의 건강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당간을 건립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광종시대에 견고한 왕권확립을 위해 외척이나 호족들의 사병철폐를 위해 철재로 만들어진 칼이나 창 등의 무기를 수거하는 방법으로 이와같은 당간이나 종을 주조하도록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고려 왕실과의 관계는 궁예를 돕는 청주김씨 일족과 왕건을 돕는 청주김씨 일족이 나뉘어져 있었지만 궁예 부하였던 왕건이 궁예의 후고구려를 명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하면서, 상대등 김희일은 왕건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인 2대 혜종(본명 왕무)과 3대 정종(본명 왕요)에게 두딸을 왕후로 시집보내어 사돈을 맺았던 것으로 보아 고려건국에 가장 큰 기여를 청주김씨들이 하였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과거제도 실시하고 왕권확립였던 왕건의 세째 아들인 4대 광종(본명 왕소)이 외척과 호족들을 배척하면서 청주김씨는 생활근거지를 청주에서 장흥, 강진 등으로 멀리 이주한 것으로 향토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청주김씨 종파는 도종파를 근간으로 하고, 강진파, 김포파, 북종파, 동령파로 분파되어 있다. 강진읍 소재 금강사에는 현무공 김억추장군이 모셔져 있고, 입구에는 이충무공과 현무공 동상이 좌우에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명량해전, 노량해전에서 각각 전라좌수영 절도사와 전라우수영 전도사로 생사를 같이한 분들이며, 더욱이 금강사 후원에는 노량해전 당시 이충무공과 함께 전사한 수십명의 청주김씨 장수들의 무덤이 당시의 직책이 명기된 비석과 함께 모셔져 있다. 내년에는 2억원(강진군청 0.85, 전남도청 1.15)의 예산을 들여 금강사 관리실, 현무공 묘역 진입로 개포장 등의 공사를 추진할 것이라는 발표에 대해 청주김씨 종친회에서는 매우 반가워하고 있다.
도종파 32대손 김영주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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